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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본국 갈 때까지’ 이주민에겐 너무 먼 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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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댓글 0건 조회조회 57회 작성일 21-11-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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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6.경향신문

원문보기 :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11061308001


‘본국 갈 때까지’ 이주민에겐 너무 먼 치과
     

지난 9월 25일 서울의 한 무료 치과진료소에서 이주노동자가 치과 치료를 받고 있다. / 김원진 기자

지난 9월 25일 서울의 한 무료 치과진료소에서 이주노동자가 치과 치료를 받고 있다. / 김원진 기자

경기도 안산에 있는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했던 필리핀 국적의 A씨. E-9(비전문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을 찾았다. 치통이 오자 시민단체에 통역을 요청해 치과에 갔다. 첫 번째 신경치료를 마치고 두 번째 치료 직전, 제동이 걸렸다. 회사에서 잔업을 해야 한다며 밤 8시 야간진료마저 허락해주지 않았다. 치과 치료는 ‘개인사정’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3개월을 참고 기다린 뒤에야 휴가를 내고 필리핀에 가 치과 치료를 받았다.

경기도 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 지원요청이 접수된 사례다. 치과 치료 특성상 최소 3~4차례는 치과를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한다. 사장이 허가해주지 않으면 치과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다.

2020년 7월 기준으로 이주민들의 의료보장(건강보험+의료급여) 적용률은 77.1%지만, 국내 거주 이주민들의 의료 접근성 은 떨어진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12월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이하 인권위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거주 이주민의 10명 중 3명(28.2%)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비용 부담(54.1%), 시간 없음(37.4%), 의사소통의 어려움(27.9%)을 꼽았다.

비급여 비중이 높아 건강보험에 들더라도 부담되는 비싼 치과 치료는 부담이 더 크다. 2020년 이주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세후 211만2000원 수준. 충치 치료 3~4개에 한달치 월급을 다 써야 할 수도 있다. 치아 상태가 안 좋아져도 일단 참고 보는 이주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인권위 실태조사에서 이주민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한 비율은 약국(42%), 다치거나 아파서 외래진료(32.4%) 다음이 치과 치료(23.7%)였다.

이주민들의 치과 치료를 가로막는 장벽은 여럿이다. 토요일까지 일하는 작업장이 많아 치과 방문이 어렵고 “의사소통이 안 돼 병원에서 진료 거부를 하는 사례도 흔하다”(아이잔 ‘이주민과 함께’ 의료팀장). 양현봉 ‘함께 아시아’ 대표는 “치과 치료 한 번 하면 몇백만원이 들 수도 있는데, 이는 본국으로 가면 차원이 다른 돈이다. 혹시나 과잉진료처럼 큰 비용을 물릴까봐 치과 가기 머뭇거리는 이주민들도 꽤 있다”고 했다.

치과의사들이 서울의 한 무료진료소에 이주노동자 진료를 하고 있다. / 김원진 기자

치과의사들이 서울의 한 무료진료소에 이주노동자 진료를 하고 있다. / 김원진 기자

■기댈 곳은 무료진료소

지난 9월 25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강북지역의 상가건물 5층에는 이주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이곳에는 매주 토요일 오후 무료 치과 진료소가 열린다. 이날 치과 치료를 예약한 이주노동자는 7명. 경기도 오산에서, 인천에서도 왔다. 온 순서대로 체온을 쟀고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했다.

필리핀에서 온 B씨(47)가 먼저 진료를 받았다. B씨는 수도권에서 봉제공장에 다닌다. 격주로 토요일에 쉬는 날 진료소를 찾는다. B씨는 “우리 회사는 그래도 토요일에 종종 쉬지만, 주말까지 출근해야 하는 동료들이 많아요”라고 했다. B씨는 상한 이가 많아 틀니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릴랙스, 릴랙스(Relax, Relax). 괜찮아요. 힘 빼세요.” B씨의 입에 힘이 들어가자 진료를 보던 성민제 원장이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입안을 들여다보면 발치된 이가 보통 많죠.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통증이 심하니까, 혹은 치료가 길어지고 비용도 들어가니까 그냥 뽑아버린 것 같아요.”

이주민들이 치과 치료를 고민하다 결국 찾게 되는 곳은 무료진료소다. 이주민 중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이들은 병·의원보다 무료진료소를 더 찾았다(인권위 실태조사). 이마저도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하나둘 운영을 중단했다. 몇몇 무료진료소가 최근 제한된 인원을 받으며 다시 문을 열었다. 김성숙 ‘함께 아시아’ 사무국장은 “대기가 길어 환자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어요. 건강보험에 든 이주민들에게 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는 일단 일반 치과에서 받고 오라고 알려드려요”라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이주민과 함께’에서 치과 진료소를 운영한다. 최근 5년간 4088명이 치과 진료를 받았다. 부산에선 코로나19 확산 이후 의료관광을 하던 치과가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통역과 함께 진료제공을 하지만 비용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 10월 31일 부산 진구의 진료소에는 25명이 찾아왔다. 주로 경남 창원, 마산이나 부산 내에서 오지만 멀리 대전, 충청 지역에서도 알음알음 찾아온다. 상당수는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최근에는 한쪽에 통증이 오면 반대쪽으로만 씹다가 반대쪽 이가 마모된 사례, 이가 상해 염증이 심해졌는데도 본국에서 가져온 진통제로만 버틴 사례가 진료소에 접수됐다. 남은 이가 하나도 없어 한국에서 식당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임플란트 5개를 하려는 이주여성의 통역을 돕기도 했다.

치료할 곳이 많으면,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려 본국에 돌아갈 때까지 버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인 아이잔 의료팀장은 “고향에서 받았던 보철 치료와 이곳의 가격 차이가 4~5배까지 났어요. 본국에서 치과 치료 비용이 더 저렴한 분들은 휴가 때 돌아가서 (치료를) 하려고도 해요”라고 말했다.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

구강 건강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건 어른들만의 일은 아니다. 이주민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상대적으로 구강 건강이 좋지 않다. “충치가 많을수록 키와 몸무게 등 발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한동헌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는 점에서 더 문제다.

2019년 경기 안산시에서 만 12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보면, 부모가 이주민일 때 치아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다. 영구치의 충치 유병률은 부모가 이주민일 때 29.8%로, 그렇지 않은 경우(13.4%)보다 2배 넘게 높았다. 이주민 가정에서 자란 어린이는 충치경험 지수가 1.5배가량 높다는 2012년 연구도 확인된다.

미등록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은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아파도 치과에 가지 못하고, 예방 차원에서의 치과 진료는 엄두도 못 낸다. 2019년 경기도 미등록 이주아동 건강권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를 보면, 자녀가 치통을 호소했을 때 10명 중 4명(40.7%)은 ‘치과를 이용하지 않았다’. 예방 목적의 치과 검진은 4명 중 3명이 받은 적이 없다(75%)고 답했다. 류재인 경희대 치의학과 교수는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은 상한 이가 치료가 안 된 경우가 많았다”며 “직접 진료를 해보면 언어 장벽 때문에 부모의 검진 참여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이주노동자 무료 치과진료소 ‘함께 아시아’ 간판 / 김원진 기자

서울 동대문구의 이주노동자 무료 치과진료소 ‘함께 아시아’ 간판 / 김원진 기자

“‘어떻게 버텼을까’ 싶은 이주민 많아”

‘함께 아시아’는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에게 무료 치과 치료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다. 2017년 3월 치과의원 15곳, 의료봉사팀 4곳, 기공소 3곳, 치과 의료기기업체 1곳이 참여해 ‘함께 아시아’를 꾸렸다. 현재 회원은 100명 안팎. 운영비는 대부분 회원의 회비로 충당한다. 환자들에게서 비용은 받지 않는다. 다음은 양현봉 ‘함께 아시아’ 대표와 일문일답.

-이주민을 상대로 치과 치료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주민들이 한국에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는 일을 하는데, 한국에서 받는 처우는 좋지 않다. 갑질도 당하고 상처도 많이 받고. 처음에는 막연히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다른 팀들과 힘을 합쳐 서울 중심가에 사무실을 냈다.”

-찾아오는 이주민들의 치아 건강 상태는.

“아프고 못 먹는 걸 떠나 ‘어떻게 버텼을까’ 싶은 환자분들도 적지 않다. 먹는 것은 물론이고, 심미적·심리적 부분도 크게 문제가 있었을 것 같은 분들을 보면 매번 놀란다.”

-상태가 안 좋을 때까지 버틴 이유는 무엇일까.

“먹고사는 생존의 다급함이 훨씬 우선하는 분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말씀은 안 하지만, 본국에 보내고 남은 돈 중에서 치과 치료를 우선순위로 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비싼 비용 말고도 치료를 주저하는 이유가 있을까.

“몇년 전 한겨울이었다. 얇은 점퍼를 입고 마산인가, 부산인가에서 온 분이 있었다. 멀쩡한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분이 이를 하려고 돈은 조금씩 모아둔 상황이었다. 애초에 치과 치료비가 비싼데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더 큰 비용을 낼 것 같아 불안했다고 하더라. 그때 위아래 다 틀니가 필요했고 해드렸다.”

-코로나19 때 잠시 문을 닫았다 최근 다시 진료를 시작했는데.

“우리도 고민이 참 많았다. 감염병 확산 때문에 의료진이 위축되고. 그런데 확 멈춰버리면 다시 시작이 어려워진다. 조금씩 부분 진료를 시작했고, 10월 말부터는 코로나19 이전처럼 운영한다.”

-무료진료소만으로는 한계가 느껴질 때도 있을 텐데.

“아무래도 오려는 분들이 많다 보니 저희도 보험이 있는 분들은 보험되는 치료는 받고 와달라고 요청한다. 정부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겠지만, 이주민들 또한 조금 더 공적 의료체계 내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