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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다문화가정의 ‘돌봄’ 가능케 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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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댓글 0건 조회조회 1,970회 작성일 20-12-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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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4.시사IN
원문보기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414

다문화가정의 ‘돌봄’ 가능케 한 판결

이주민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행정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올해의 이주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은 걸림돌로 꼽혔다.
 

■ 올해의 이주인권 디딤돌 판결 ①

‘체류관리지침’은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김철효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개요] 결혼이주여성이 양육 지원을 위해 여동생을 방문동거(F-1) 체류자격으로 초청했으나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안산출장소는 부모가 만 65세 이상 고령 등의 사유로 양육 지원이 어려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류를 불허했다. 수원고등법원 제1행정부 이광만·도정원·양성욱 판사는 이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2019누13400판결). 이와 유사하게 결혼이주여성의 남동생을 초청했으나 ‘남성’이라는 이유로 체류를 불허한 출입국 판단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제1-1 행정부 고의영·이원범·강승준 판사는 불허 결정을 취소했다(2018누78253판결).

ⓒ윤현지 그림

어린 자녀를 돌봐줄 사람을 찾지 못해 애를 먹는 맞벌이 부부 두 가족이 있었습니다. A 가족은 아이를 돌보던 외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아이 이모에게 부탁할 참이었습니다. B 가족은 외삼촌이 돌봐줄 수 있다고 하여 해결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귀화한 결혼이주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인 이모와 외삼촌이 한국에 와서 같이 지내려면 법무부로부터 ‘체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출입국·외국인청은 ‘법무부 지침’에 따라 A의 이모는 외할머니가 65세 이상 고령이 아니라서 허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B의 외삼촌은 남성이라서 거부됐습니다.

결혼이주민이 자녀의 육아에 도움을 받으려고 부모나 형제자매를 초청하려면 이 ‘지침’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체류 외국인 관리지침에 따르면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자의 경우 외국 국적인 부모를 초청하여 최장 4년10개월 동안 같이 거주할 수 있는데, 이때 주어지는 체류자격을 방문동거(F-1-28)라고 합니다. 만일 아이들의 할아버지·할머니가 사망했거나, 만 65세 이상 고령이라 ‘귀화자의 출산·양육·인도적 지원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4촌 이내 여성 혈족’ 한 명을 초청하여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된 부모는 ‘돌봄 전쟁’을 치를 때 더 많은 제약을 겪어야 합니다.

인천출입국·외국인청 안산출장소는 이주여성의 어머니가 만 65세가 안 되었기 때문에 여동생의 체류자격을 불허한 결정은 체류관리지침에 따라 적법한 처분이었다고 주장합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를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면서 “체류관리지침은 ‘행정규칙’으로서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이주민에 대해 차별대우한 것을 위법이라고 확인한 이주인권 디딤돌 판결 사례입니다.

B 가족은 남편 대신 이주여성이 생계를 도맡은 상황이라 B의 외삼촌이 조카의 양육을 돕기로 하고 입국했습니다. 그런데 인천출입국·외국인청장은 역시 ‘지침’에 따라 외삼촌이 ‘노동능력이 있는 남성으로서 여성에 비하여 불법취업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체류를 불허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4촌 이내의 혈족 남성만 있는 결혼이민자의 경우 차별을 받게 됨이 명백하고, 이러한 차별적 취급에 합리적인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불법취업 가능성 주장에 대해서도 “본국의 문화적 배경이나 여성의 노동참여율 등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위의 두 판결은 지금껏 외국인의 체류 허가와 관련하여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온 ‘체류관리지침’이 항상 적법한 것은 아니며, 평등원칙과 비례원칙이 우선하여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 출입국·외국인청의 처분이 지침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이면 위법이기 때문에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하여 이주인권의 디딤돌이 되는 판결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올해의 이주인권 디딤돌 판결 ②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충분한 안전교육을

윤영환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개요] 인천지방법원 배구민 판사는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러시아 출신 외국인노동자에게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러시아어를 통해 충분한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사용자에게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2019가단242761).

ⓒ윤현지 그림

러시아 출신 노동자 C씨는 합판 절단기계를 사용하여 절단 작업을 하던 중에 오른쪽 손가락 3개가 절단되는 상해를 입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기계는 합판 또는 목재를 절단하는 기계로,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채 사용하면 매우 위험한 기계였습니다. C씨는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공장의 현장 책임자는 한국인이었고, 그는 러시아어에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회사는 C씨에게 ‘러시아에서 파견된 다른 직원을 통해 안전교육을 실시하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회사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고, 회사의 안전배려의무 위반과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주민 문제에서 언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올해 이주인권 디딤돌 판결 중에서도 언어와 통역, 외국인에 대한 편견 없는 수사와 재판심리의 중요성이 부각된 판례들이 있습니다. 외국인 배우자를 밀어 넘어뜨려 상해를 입힌 남편에 대해 원심에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통역인 없이 한국어가 서투른 피해자가 피해를 진술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표현의 차이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고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습니다(부산지방법원 2019노2140판결). 외국인 여성에 대한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 검사는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법원은 “CCTV 영상으로 사실관계가 바로 확인될 수 있는 상황에서 원고가 거짓 진술을 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라고 판단하며 원고의 진술을 배척하지 않았습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18가단226247 손해배상).

내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발생률보다 외국인노동자의 산업재해 발생률이 훨씬 높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안전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현실이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에게 안전교육을 할 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해 진행하여야 함은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입니다. 위 사례는 외국인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안전교육을 하라는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여 디딤돌 판결로 선정되었습니다.
 

■ 올해의 이주인권 디딤돌 판결 ③

체류기간 지나도 난민 신청 가능하다

이상민 (대한변호사협회 난민이주외국인TF위원장)

[개요] 이란인 D씨는 체류기간이 9일 지난 후에 난민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법무부 난민 지침에 의해 출국명령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 제3행정부 이상주·이수영·백승엽 판사는 난민 신청자의 구체적 개별적인 사정을 심사하지 않고 지침만을 근거로 출국명령을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2019누65780판결).

ⓒ윤현지 그림

이란인 D씨는 2019년 2월 단기방문(C-3) 체류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2019년 3월19일, 체류기간 만료일이 9일 지난 후에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인정 신청을 합니다. 이틀 후 출입국은 D씨에게 한 달 내로 출국하라는 출국명령을 내렸습니다.

법무부 내규인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지침(이하 난민 지침)’에 따르면 난민 신청 당시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난민 신청자(G-1-5) 체류자격 변경 허가를 받고 한국에 체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난민 신청 당시 미등록 체류자라면 모두 출국명령 대상이 됩니다. D씨는 2019년 6월 출국명령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난민 지침이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 준칙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이고 대외적인 구속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출입국이 출국명령으로 달성하려는 공익과 D씨의 불이익을 비교하지 않고 난민 지침만을 근거로 해당 처분을 내린 점, 또 출국명령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D씨의 불이익보다 크다고 쉽게 단정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법원은 지적했습니다.

D씨는 체류기간을 고작 9일 넘겼습니다. 과거에는 난민 신청자가 체류기간을 조금 넘겨서 난민 신청을 하더라도 난민 신청 자격(G-1-5) 변경 허가를 받았습니다. 법무부는 2018년 10월 난민 지침을 변경하고 미등록 체류자에 대해서는 출국명령을 내립니다. D씨도 만약 몇 개월만 빨리 입국했더라면 체류 허가를 받았을 것입니다. 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을 들어 출국명령이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체류기간이 지난 뒤 난민 신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따져보지 않고 난민 지침에 따라 일률적으로 출국명령을 하는 것은 위법합니다. 그 경우에도 난민 신청자를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심사한 후에 출국명령을 내릴지 체류 허가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 판결은 출입국이 체류기간이 지난 후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에 대해 내부 지침만을 근거로 출국명령을 내리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 올해의 이주인권 걸림돌 판결

미등록 노동자 현실 악용한 사업주에 면죄부

송원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상근 변호사)

[개요] 사원 수 약 100명, 매출액 580억원 규모의 기업 대표이사 E씨는 인력 파견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하여 취업 자격이 없는 타이(태국) 국적의 외국인 등 외국인노동자 40명을 약 1년8개월 동안 고용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되었다. 대법원 제1부 김선수·권순일·이기택(주심)·박정화 대법관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E씨가 위 노동자들을 ‘고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2018도3690).

ⓒ윤현지 그림

외국인이 국내에서 취업하려면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체류자격을 갖지 않은 사람을 ‘고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취업 활동을 한 외국인과 그 외국인을 고용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사업주가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을 파견받아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게 하는 것도 출입국관리법이 금지하는 ‘고용’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사업주가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을 ‘파견’받아 자신을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한 것이며, 이는 출입국관리법에서 금지하는 ‘고용’으로 볼 수 없어서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한국과 타이 간에 맺은 비자면제협정에 따라 타이인들은 국내에 90일 이내 무비자 체류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부 타이인들은 무비자로 입국한 후 취업을 하고 90일을 넘긴 채 미등록 상태로 지내는 실정입니다.

이들은 비자가 없기 때문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미등록 체류자들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을 훨씬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사업주들은 직접고용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을 받자 영세한 인력업체와 계약을 맺어 파견된 노동자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주민 파견노동의 구조에서 실제로 이득을 얻는 것은 사업주입니다. 이들은 인력 파견업체와의 계약으로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면서도 퇴직금, 각종 수당 및 보험료, 단속으로 인한 범칙금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파견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에서 떼어낸 수수료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인력업체들은 3개월 단위 계약으로 퇴직금 지급 의무를 회피합니다. 심지어 이 사건의 인력 파견업체는 고용노동부의 체불사업주 명단에 등재된 상태이기도 합니다. 결국 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강도와 높은 사고 위험에 시달리면서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희생됩니다.

이 판결로 사업주들은 파견업체를 활용하여 이주노동자를 착취해도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법원의 확인을 받은 셈입니다. 독일의 경우 근로자파견법에서 노동 허가가 없는 외국인을 파견하는 경우 파견업체와 사업주 모두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 같은 조항이 없기 때문에 출입국관리법상 ‘고용’의 범위에 파견 노동자의 사용도 포함해야 했으나, 범죄와 형벌은 미리 법률에 규정되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의 한계로 인해 실제로 이득을 취하는 사업주만 처벌을 면하는 부당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원 수가 거의 100명에 달하는 E씨의 기업에서도 노동자 파견을 통해 노동자에 대한 기본적 책임을 회피하는데, 여기에 법적 처벌도 하지 못한다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기본권 침해에 무방비 상태로 놓이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판결은 여전히 사업주가 부담했어야 하는 책임을 면제해주고 있기 때문에 올해의 걸림돌 판결로 선정되었습니다.

김철효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