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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내 이웃, 이주민②] 평일엔 엔지니어, 주말엔 사서로…자칭타칭 ‘이주민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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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댓글 0건 조회조회 401회 작성일 23-05-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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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5.투데이신문

원문보기 :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601


[내 이웃, 이주민②] 평일엔 엔지니어, 주말엔 사서로…자칭타칭 ‘이주민 리더’


우리의 이웃, 너레스 쿠마르씨의 이야기

지난 2019년 네팔서 한국와 E-9 근로자로 기기회사 취업
시흥 공장서 엔지니어로 12시간 일하며 기숙 생활 중
3년간 주말엔 네팔도서관 사서로 근무…현재 대표직 맡아
공동체 활동으로 지난해 지역사회 이주민 리더로 선정
“이주민 문화활동·커뮤니티에 대한 많은 관심·성원 필요”


‘이주민’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사는 사람 또는 다른 지역에서 옮겨 와서 사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이주민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213만 명이다. 현재 외국인 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기면 ‘다문화 사회’로 규정하고 있는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 수는 이미 지난 2019년 국내 인구의 4%를 넘어섰다.

이처럼 이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이들이 아닌 전국 곳곳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웃’이 됐다. 많은 이주민들 중 다문화가 대한민국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노력해 온 사람들이 있다. 

<투데이신문>은 연재 기획 [내 이웃, 이주민]을 통해 우리의 이웃으로 자리매김한 이주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물론 삶의 숨겨진 그늘을 직접 들었다. 더 나아가 그들이 더욱 우리나라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의 제언들을 담았다.

경기도 안산시 다문화거리 인근에 위치한 네팔도서관에서 너레스씨가 밝게 웃고 있다. ⓒ투데이신문
경기도 안산시 다문화거리 인근에 위치한 네팔도서관에서 너레스씨가 밝게 웃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인도와 티베트 자치구 사이에 위치하고, 광활한 히말라야 산맥 속에 자리잡은 낯선 국가 ‘네팔’.

많은 도시 중 비랏나가르라는 곳에서 약 10km 떨어진 지역 ‘머데시 사마즈’가 바로 너레스(30)씨의 고향이다. 

그곳으로부터 지난 2019년 E-9 근로자(비전문취업)로 한국에 온 그는 시흥 소재 모 전기전자 기기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빡빡한 스케쥴을 소화하며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쉴 법도 한데 달콤한 휴식대신 벌써 3년째 매주 안산으로 향하고 있다. 

60시간의 고된 근무 후 겨우 맞은 달콤한 주말에도 너레스씨는 쉬지 않는다. 바로 지난 2020년 그를 중심으로 많은 연대인과 함께 만든 ‘네팔 도서관’ 때문이다. 

남다른 모국 사랑을 가진 그는 한국에서는 가난하고 작은 국가로 알려져 있는 네팔에 대한 편견을 깨고 네팔의 문화를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더불어 한국에 살고 있는 네팔인들에게는 접하기 어려운 모국의 책을 볼 수 있게 해주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도서관 구석구석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도서관을 가꿔 나갔고, 크고 작은 행사도 솔선수범 진행하며 점차 커뮤니티를 조성해갔다.

그 덕에 타지에서 외로움을 호소하던 네팔인들이 하나둘씩 그를, 도서관을 찾아왔고 그곳에서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됐다. 그들의 미소를 근거로, 너레스씨는 더 이상 네팔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가 아닌 이주민들의 든든한 ‘리더’로 한국이라는 또 다른 세상 앞에 서게 됐다.

흥 소재 모 전기전자 기기회사에서 근무 중인 너레스씨. [사진제공=본인]
흥 소재 모 전기전자 기기회사에서 근무 중인 너레스씨. [사진제공=본인]

생계를 위해 선택한 ‘한국행’

과거 너레스씨는 네팔에서 컴퓨터(IT·CIT)를 전공했고, 인도로 유학을 가 사회학을 배울 정도로 공부에 뜻이 컸다. 공부에 길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집안 형편은 그의 오랜 공부에 필요한 금액을 지원해줄 정도로 넉넉하지 않았다. 가족이 당장 목전에 둔 문제는 ‘생계’였다.

너레스씨는 자신이 열심히 일해 가족들에게 보탬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학 졸업 후 바로 컴퓨터 관련 사무실에 취업했다. 하지만 일하는 동안 아직 부족한 네팔의 기술에 한계를 마주했고, 이는 점점 정체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소득도 기대만큼 높지 않아 점차 부담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연계해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그렇게 떠날 결심을 하게 됐다. 다행히도 그에게 한국은 이미 고향의 많은 지인과 친구가 이미 일해본 적이 있거나, 일을 하고 있어 고마우면서 동시에 궁금한 나라였다. 

하지만 한국을 가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배우고 시험을 치러 통과해야만 했다. 고용허가제 시험인 ‘한국어 능력 시험’ 통과를 위해 낯선 단어를 매일 쓰고, 보고, 읽으며 그렇게 언어를 익혔고 1년의 공부와 두 번의 도전 끝에 합격할 수 있었다.

또한 당장 살아야 할 곳이다 보니 유튜브와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문화, 예절 등을 학습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족들의 생계를 걸었기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 더 성실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가족없이 혈혈단신으로 온 한국. 그는 곧바로 노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유선통신장비를 설계 및 가공 조립하는 회사에서 오퍼레이터로 취직하게 된 그는 하루의 절반을 노동으로 채웠다. 퇴근하고 나면 회사 옆에 마련된 기숙사로 향했다. 그야말로 회사와 기숙사만 왔다갔다하며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다. 

같이 일하는 여러 국가 사람들에게 밝게 다가가던 넉살 좋은 너레스씨였지만, 네팔과 다른 한국 문화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어려웠던 젓가락 사용부터 힌두교 교리에 따라 소고기 음식 피하기, 청국장 냄새 익숙해지기, 카드 만들고 계산하기 등 그에게 이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익숙해져야 할 것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당차게 한국행을 결심했지만 당장 코 앞에 현실적인 문제가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특히 언어문제는 당장 근무를 해야 하는 너레스씨에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오고 나서도 정부 도움으로 약 1년 정도 공부를 했지만 한국어는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게만 느껴졌다. 네팔에서 한국어를 배울 때 존댓말로 배웠기 때문에 공장에서 사용되는 반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애를 먹은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처음 막 일을 시작했을 때 언어 소통이 안돼서 불편했어요. 분명 다 배워뒀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어를 처음 배울 당시 존댓말로만 배우다 보니까 반말과 구분하는 게 어려웠죠. 일화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점심시간에 상사에게 ‘식사 먹었어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럴수록 너레스씨는 기죽지 않고 근무 시간을 쪼개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 덕에 이제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한국어로 문자를 보고, 쓸 수 있게 됐다. 또 아직 언어가 미숙한 친구들에게 통역을 해줄 정도로 실력이 성장했다.

언어를 해결했지만 또 다른 난관, 외국인이라는 편견이 그를 찾아왔다. 한국인 동료들은 그가 외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잔업을 맡기거나 근무 성실도를 보다 꼼꼼히 확인하는 등 예상치 못한 차별을 일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너레스씨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는 방법을 택했다. 특유의 넉살로 상사, 동료에게 가리지 않고 질문했고 해결점을 얻어냈다. 밝은 웃음으로 먼저 다가가자, 차가운 얼음 같았던 그들의 마음은 사르르 녹았고 자연스럽게 관계의 온도는 높아졌다.

경기도 안산시 다문화거리 인근에 위치한 네팔도서관 내부 모습. ⓒ투데이신문
경기도 안산시 다문화거리 인근에 위치한 네팔도서관 내부 모습. ⓒ투데이신문

지하 1층 사랑방 ‘네팔도서관’

엔지니어로 근무하기도 바쁜 나날에도 너레스씨는 또 다른 직업을 가졌다. 바로 네팔도서관의 ‘사서’였다. 

지난 2020년 월세 10만원의 연립주택 2층 작은 방에서 출발한 ‘네팔 도서관’은 2년 만에 3배 이상 커진 규모로,  안산 다문화거리 인근 건물 지하 1층에 자리를 잡았다.

너레스씨를 비롯한 약 20명의 네팔 공동체 인원 등은 매달 1만여원씩 모은 돈으로 월세를 내며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도서뿐만이 아니라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작은 사원, 전통 악기 등을 마련해 마치 ‘사랑방’처럼 온정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소수 인원으로 시작한 도서관은 어느새 200여명의 회원들이 모였고, 2000여권의 책이 모아졌다. 그들은 커뮤니티를 이뤄 네팔 최대의 힌두교 축제인 ‘더새인 축제’ 를 같이 즐기거나 같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이들을 단단하게 뭉치게 해줄 수 있었던 많은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너레스씨다. 그는 바쁜 일정을 쪼개고 또 쪼개 주말을 반납한 채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다. 도서관 구석구석 쓸고 닦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 SNS를 통해 구입한 네팔 서적을 도서관에 하나둘씩 채워나갔다. 도서관을 방문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직접 책을 택배로 보내주기까지 했다.

이외에도 사원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고 싶은 동포들을 불러 모았고, 네팔 전통 악기를 도서관 한편에 채워 음악을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네팔도서관에 몰두한 이유는 한국에서 네팔의 책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하고, 모국을 그리워할 자신과 닮은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를 해주고 싶어서였다.

“한국에 사는 노동자들은 회사에서도, 일상에서도 한국 사람만 보고 한국말만 해야 하잖아요. 주말이라도 도서관에 와서 고향 사람 만나고 네팔어로 대화하면 잠시나마 고향에 온 기분도 들고, 서로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도서관을 만들게 됐어요. 도서관을 찾은 회원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주말에 일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아요.” 

이외에도 그는 지역 잡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는 등 많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노고에 회원들은 너레스씨를 도서관 대표로 추대했다. 더 나아가 지난해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선정한 ‘지역사회 이주민 리더’ 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너레스씨의 가족. [사진제공=본인]
너레스씨의 가족. [사진제공=본인]

비록 가족과 떨어져 있지만

한국에 온지 4년째지만, 그는 여전히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일을 시작한지 1년 만에 국내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발병한 탓이다. 하늘길은 단단히 막혀버렸고, 네팔로 가는 비행기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상이지만 이따금씩 모국에 있는 부모님, 누나와 형, 그리고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럴 때 마다 영상통화로 마음을 달래보지만,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없으니 그리운 마음이 모두 삼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걱정 섞인 말에는 애써 웃고, 가족들의 위로에는 몇 번이고 새어 나올 뻔한 눈물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과 같은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회원들도 생각났다. 이에 가족이 그리운 사람을 위해 지역 공동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네팔 사람들에게 중요한 뉴스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네팔 가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외지에서 혼자 지낼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자신에게 가장 힘이 돼 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지만, 그럴 때 마다 그는 네팔에서 지낼 행복한 미래를 상상했다. 이 뜨겁고 간절한 마음 하나로 그는 외롭고 힘든 타지 생활을 견디고 있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그는 도서관을 성장시키는데 더 열중하기도 했다. 자신과 같은 그리움을 지닌 채 도서관을 찾는 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선물해주며 잠시나마 달콤한 안식처를 선물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덕에 도서관을 찾는 이들은 ‘회원’이라는 호칭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서로 온정을 베풀고 정답게 서로를 다독였다. 너레스씨는 망설임없이 그들을 한국의 ‘가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선정한 ‘지역사회 이주민 리더’에 선정된 너레스씨(왼쪽). [사진제공=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지난해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선정한 ‘지역사회 이주민 리더’에 선정된 너레스씨(왼쪽). [사진제공=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누구보다 단단한 미래가 있기에

현재 너레스씨는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바로 지하 1층에 위치한 도서관이 지상으로, 보다 넓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지하층이다 보니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새거나, 꾸준히 관리를 해줘도 책에 곰팡이가 생기는 등 아직은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서에 이어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의 집’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또 하나의 목표다. 네팔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 인종 사람들을 많이 수용할 수 있고 그들이 억눌렀던 자신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리고 목표와 결이 조금 다른 ‘꿈’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고 모아서 고향에 돌아간 뒤 한국에서 배운 기술과 기업 문화를 활용해 자신만의 사업체를 꾸리고자 한다. 과거 자신의 공부를 위해 힘든 공장 일까지 병행하며 금전적인 지원을 해준 가족을 부양하고, 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던 고향 친구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다. 

또한 고향에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향유할 수 있는 도서관을 설립하는 것도 꿈이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형편으로 인해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말이다.

한국에 온지 5년이 다 되가는 그는 최근 ‘재입국 특례외국인노동자’로 선정돼 다시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가 5년 동안 한 회사에 근속하며 성실하고 모범적인 근무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근무하는 12시간이 길긴 하지만, 저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으니 힘들더라도 감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열심히 달려 나가야죠.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예요. 나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선배, 동료, 후배 모든 분들이 잘 되고 행복했음 좋겠어서 더 다가가고 먼저 노력했던 거 같아요.”

강원도 설악산에 방문한 너레스씨.[사진=본인제공]
강원도 설악산에 방문한 너레스씨.[사진=본인제공]

네팔은 대륙으로 둘러싸인 나라다 보니, 바다를 볼 수 없는 국가다.

한국에 와서 바다를 마주한 뒤, 그는 바다와 사랑에 빠졌다. 그의 애정처럼 너레스씨의 꿈은 바다와 많이 닮아 있다. 당장 주위에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는 시야를 보다 넓혀 자신의 바다를 찾아냈고, 드넓은 대양을 항해하기 위해 배를 만들고 선원을 구하고 있다. 그는 언제든 전 세계를 오고 가는 모험에 과감하게 몸을 던질 준비가 된 셈이다. 

“네팔에는 바다가 없는데, 그래서 한국에 와서 도서관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강원도 등 돌아다니면서 바다도 보면서 휴가를 즐기곤 했어요. 그럴 때 가장 큰 행복과 보람을 느꼈죠. 저는 일, 도서관, 공동체의 모임, 여행 등 어느 것도 소홀하게 하지 않고 매사 최선을 다해요. 이런 저를 단순히 돈을 벌러 온 노동자가 아닌 지역 사회 공동체 활동과 사회 공헌에 이바지하는 사회사업가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